눈먼 닭의 병아리 기르기-이익 『성호집』에 실린「瞎鷄傳」
고전 읽기의 즐거움/정약용,박지원,강희맹 외 지음/민족문화추진위원회 편/신승운,박소동 외 옮김/솔출판사/1999.2.23/7,000원
눈먼 암탉이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데, 바른편 눈은 완전히 덮였고 왼쪽 눈도 반 이상 실눈이 되어 있었다. 먹이가 그릇에 가득하지 않으면 쪼아먹지를 못하고, 다니다가 담장에라도 부딪히면 헤매다가 돌아나오곤 하니, 모두들 저래가지고는 새끼를 기를 수 없다고 하였다.
마침내 날짜가 차서 병아리가 되어 나오니 빼앗아서 다른 어미에게 주려 하였으나 한편으로 측은하기도 하여 차마 그러지 못하였다. 얼마 후 살펴보니, 별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뜰 주변을 떠나지 않는데 병아리들은 똘똘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다른 어미를 보면 대개가 병들고 상처받아 죽거나 잃어버려 혹 절반도 제대로 못 기르는데 유독 이 닭만은 온 둥지를 온전히 길러내니 어쩐 일인가?
흔히들 새끼를 잘 길러낸다고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즉, 먹이를 잘 구하는 것과 환난을 잘 막아주는 것이다. 먹이를 잘 구하려면 건강하여야 하고 환난을 막으려면 사나워야 한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면 어미 닭은 흙을 후비고 숨어 있는 벌레를 찾아내느라 부리와 발톱이 다 닳아 빠지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새끼들을 불러모으느라 잠시도 편히 쉴 틈이 없다.
또 위로는 까마귀와 솔개, 주위로는 고양이나 개들을 살피며 부리를 세우고 깃을 퍼덕여 목숨을 내걸고 항거함이 마치 용사가 맹적을 만난 것같이 한다. 그러다가 숲속으로 달아나서는 때맞추어 불러서 몰고 오는데 병아리는 삐약거리며 낭창낭창 뒤따라오긴 하지만 힘이 삐지고 병들기 십상이다. 때로는 엇갈리어 길을 잃기라도 하면 물이나 불 속에 빠져 생사를 기필할 수 없으니, 이렇게 되면 먹이를 구해준 것도 허사로 돌아간다.
또 조심조심 보호하고 타오르는 불길같이 맹렬히 싸워도 환난이 스쳐가고 나면 병아리 육, 칠 할을 잃고 만다. 게다가 너무 멀리 나가 사람의 보호도 받을 수 없으면 사나운 새매를 무슨 수로 당해내겠는가. 이렇게 되면 환난을 방비하느라 애쓴 것도 허사가 된다.
그런데 저 눈먼 닭은 하나같이 모두 이와는 반대이다. 멀리 갈 수 없으므로 사람 가까이에서 맴돌고, 눈으로 살필 수 없으니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행동을 조심조심하여 노상 끌어안고 감싸준다. 그러므로 힘쓰는 흔적은 보이지 않아도 병아리들은 저들끼리 알아서 먹이를 쪼아먹고 자라난다. 무릇 병아리를 기르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아서 교란시키는 것이 가장 금기인데, 저 눈먼 닭은 지혜가 있어서 그러한 것은 아니겠으나 방법이 적중하여 마침내 양육에 만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사물을 양성하는 방도는 한갓 젖 먹이는 은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알겠다. 통솔하되 제각기 제 삶을 이루도록 해야 하니, 그 요령은 오직 잘 인솔하여 잃어버리지 않는 것뿐이다. 나는 이 병아리 기르는 것을 인하야 사람을 양육하는 도리를 깨달았다.
이익 『성호집』에 실린「瞎鷄傳」
이익(1681-1763)실학자로 호는 성호, 본관은 여주. 대사헌 이하진의 아들이다. 성리학으로는 퇴계 이황을 사숙하였고 실학으로는 반계 유형원의 학풍을 계승하였다.
2006/04/29